Scene #1 칠흑같이 어두운 백색의 공간

‘킁킁킁’ ‘두근두근두근’ ‘킁킁킁’ ‘두근두근두근’

검정 화면, 냄새 맡는 소리와 심장 뛰는 소리가 빠르게 교차한다. 무언가 커다란 실루엣이

보이고, 그 바로 앞 벽에 몸을 숨긴 그. 가픈 호흡을 애써 안으로 삭히는 모습. 많이 놀라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큰일 날 뻔했다. 제기랄! 이 안에 저런 게 있다니!” 최대한 자세를 낮추고 몸을 수그린 채 한탄하듯 내뱉는 그의 속마음. 시선은 화면을 향하고 빛나는 두 눈동자를 굴리며 주위를 살피고 있다. 반짝이는 방울들이 맺힌 그의 얼굴, 눈, 동공 순으로 줌인 되면서 과거로 화면 전환.
Scene #2 버스의 창

늦은 오후, 한산한 버스 안 창가 자리에 앉아있는 그의 모습이 보인다. 외부에서 버스 안,

그가 바라보는 창밖의 풍경으로 화면이 빠르게 바뀐다. 버스가 이동하며 지나가는 창밖 도시의 풍경들이 보이고,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음을 보여준다. 버스에서 내리고, 정류장에 잠시 서있다 곧 다른 번호의 버스로 갈아타는 그.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내리고. 한 번 더 이 과정을 반복한다. 안정적인 표정과 몸에 밴 듯한 행동에서 그가 얼마나 오랫동안 이 과정을 해왔는지 느껴진다. 어느 순간, 그의 손이 버스 벨을 누른다. ‘띵동’ 특별할 것 없는 벨 소리. 이와 함께 그의 눈이 묘한 뉘앙스를 풍긴다. “여기다!” 혼자 남아 있던 버스에서 마지막 승객으로 하차하는 그.
Scene #3 내려서 들어간 곳

정류장 주위를 둘러보며 장소 선택에 만족한 그의 표정. 근처 주택가로 이동, 어느새 자정이 넘은 시간, 거리에 사람이 없다. 그럼에도 걸음걸이가 굉장히 조심스럽다. 어둠이 드리워진 건물과 건물 사이, 비좁은 길들만 찾아 돌아다니며 주변 집들을 살펴보고 있다. 외부에 설치된 감시 카메라가 많은 집을 볼 때마다 구미가 당기는 듯 혀로 윗입술을 할짝거린다. 유독 담장이 큰 집 앞, 큰 결심을 한 표정. 그 앞을 지나,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다른 길로 들어가고 얼마 안 가 멈춘다. 카메라가 없는지 여러 번 확인 후, 갑자기 있고 있던 옷을 모두 벗기 시작한다. 팬티마저 벗고 옷을 전부 가로등 뒤에 숨긴다. 나체가 된 그. 그렇게 헐벗은 몸이 되었지만 오히려 더 자연스러워진 듯, 거리를 활보하며 눈독 들였던 그 건물 앞에 도착한다. 서성거리다 곧 대문 옆 그나마 낮은 펜스 위에 손을 올리고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담을 넘는 그의 뒷모습.
Scene #4 다시 현재, 이상공간

검정이 아닌 다른 색이 어둡게 지배하고 있는 몽환적인 공간. 무언가에 홀린 듯 비틀비틀

좀비처럼 전진 중인 그. ‘쓱’ 갑자기 그의 어깨에 무언가가 스치듯 부딪쳤다. 본능적으로 그는 자신으로 인해 떨어지는 그것을 잡아내었고, 원래의 자리로 위치시킨다. 너무 순간적이라, 무엇이었었는지 정확히 판단할 수 없지만 또 다른 아찔한 상황이었던 것은 분명했다. “나에게 집중하자, 집중!” 다시 정신을 가다듬으려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그. 하지만 곧바로 같은 상황이 연출되고, 이번에도 간신히 깨뜨리지 않고 균형을 유지해낸다. 점차 흐릿해지고 뿌옇게 변하는 그의 시야. 시선이 향한 쪽 저 멀리 아주 미세하게 밝은 점이 깜빡이고 있다. 그는 그것을 알아채지 못한 것 같다. 카메라 무빙이 그의 고개에서 그 점에 가까워지고 화면 전체가 하얗게 변한다. 다시 하얀색에서 녹화 중인 카메라 스크린으로 돌아오고, 화면 속에서는 물체들이 흔들리고 떨어질 뻔한 상황들이 녹화되고 있다. 하지만 영상 어디에도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자막 – No signal 이상 없음